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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보석 찾기(브랜드 이야기)

(3) 까르띠에 최초 현대식 시계 및 비운의 여인 잔느 투생

by jewel case 2020.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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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조제프 까르띠에, 피에르 까미유 까르띠에, 자끄 데오뒬 까르띠에

 

◎ 최초의 현대식 손목시계 개발 

장자인 '루이 조제프 까르띠에'는 다방면에 관심이 많았는데,
이런 그의 성격은 '까르띠에 프레르'가 보석 외에
시계 사업에 진출하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특히 그는 최초의 현대식 손목시계로 꼽히는

산토스 뒤몽(Santos-Dumont)을 개발해 역사에 이름을 남겼습니다. 

Santos-Dumont은 까르띠에 프레르가 만든 첫 시계는 아니었습니다. 
까르띠에는 이전에도 시계를 만들긴 했지만, 
이들은 시계라기보단 보석 세공을 위한 바탕 장신구의 성격이 강했습니다. 


금팔찌 귀퉁이에 시계가 붙어 있는 식이었는데,

때문에 시계 업계에서도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루이 조제프 까르띠에에겐 알베르토 산토스-뒤몽

(Alberto Santos-Dumont)이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는 기인이자 비행 모험가로 유명했는데요.

 

알베르토 산토스-뒤몽은 1901년 자신이 직접 제작한 열기구를 타고

에펠탑 주위를 아슬아슬하게 날아 유명해졌는데,

이듬해인 1902년에는 자신의 다음 비행 계획 수립에

친구인 루이 조제프 까르띠에를 동참시켰습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루이 조제프 까르띠에에게 비행에 적합한 시계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휴대용 시계들은 회중시계가 대세였습니다. 

특히 남성들은 회중시계가 손목시계보다 더 점잖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요. 

당시만 해도 손목시계들은 회중시계 형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회중시계의 크기를 줄이고 위아래 여유 공간을 만들어

거기에 줄을 고정해 차고 다니는 식이었는데, 
최근 유행하고 있는 나토밴드 시계를 연상해 보면 됩니다. 

 

이때 루이 조제프 까르띠에는 한순간도 전방에서 눈을 뗄 수 없는 

비행 상황을 고려해 회중시계 대신 손목시계를 만들었는데, 

이 시계는 기존의 손목시계 모양과는 꽤 차이가 있었습니다. 

케이스에 줄을 건 게 아니라 끼운 형태였는데요.

게다가 러그가 손목 방향으로 부드럽게 굽어 있는 등

현대 손목시계의 특징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 시계가 세상에 공개된 건 1904년의 일이었습니다. 

알베르토 산토스-뒤몽은 이 시계를 매우 마음에 들어했는데,

그가 세상의 주목을 받는 사람이다 보니 그의 시계도 유명해졌고

이는 '까르띠에 프레르'가 본격적으로 시계산업에 뛰어든 계기가 됐답니다.

 

까르띠에 산토스 뒤몽 워치. large 모델 (6,800,000원)

 

현재 우리가 까르띠에 시계를 볼 수 있게 된 데에는

알베르토 산토스-뒤몽의 공이 컸던 셈이죠.

루이 조제프 까르띠에는 이 시계에 알베르토 산토스-뒤몽의 이름을 따서

산토스 뒤몽(Santos-Dumont)이라 명명했습니다. 


◎ 까르띠에의 시그니처 아이콘, 팬더 

표범이 까르띠에의 시그니처 아이콘이 된 것도 이 무렵의 일이었습니다. 

까르띠에 매장에선 이 표범을 팬더(Panthh′ere)라고 부르는데, 

팬더는 표범을 뜻하는 프랑스어 표현입니다.

팬더는 '루이 조제프 까르띠에'의 연인이었던

잔느 투생(Jeanne Toussaint)의 애칭이었다고 합니다.

 

잔느 투생

 

과거 프랑스에선 팬더가 관용적 표현으로 ‘요부’를 뜻하기도 했는데,

이는 잔느 투생의 이미지와도 어느 정도 일치했습니다.

1887년생인 잔느 투생은 1875년생인 루이 조제프 까르띠에보다 12살이나 어렸지만,

귀여운 숙녀보다는 날카롭고 앙칼진 모습으로 자신의 매력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았답니다. 

'루이 조제프 까르띠에'는 잔느 투생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1914년 팬더 장식이 들어간 여성 시계 Panth′ere를 출시했습니다.

이는 까르띠에에서 팬더 모티프가 형상화된 최초의 상품이었습니다.

 

까르띠에 최초의 팬더 워치

 

1933년 루이 조제프 까르띠에는 잔느 투생을

'까르띠에 프레르'의 디자인 디렉터로 영입했는데,

이때 잔느 투생이 팬더를 모티프로 다양한 상품을 내놓음으로써

팬더는 까르띠에의 시그니처 아이콘으로 굳어지게 됐습니다. 

루이 조제프 까르띠에와 잔느 투생은 서로 사랑했지만  
까르띠에 가문에서의 반대로 부부의 연을 맺지는 못했습니다. 

잔느 투생의 과거가 반대의 이유였는데요.

 

오랫동안 루이 조제프 까르띠에의 곁에 머물고도 

그 이상의 관계가 되지는 못했던 잔느 투생. 

 

둘의 관계를 안타까워하는 이들에게 잔느 투생은

“괜찮습니다. 저는 이 일을 더 사랑합니다.

저는 까르띠에 브랜드와 결혼한 까르띠에의 디자이너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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